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2003.5.1)

2003년, 생일을 맞아 친구에게서 책을 선물 받았다. 책 안쪽에는 ‘리더십’에 대한 친구의 간단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이한 편에 속한다. (생각해보니, 특이한 점이 꽤 많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 이미지에 딱 맞는 친구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가는 모습에 끌렸던 걸까. (대학생 이미지에 걸맞는 대학생이 ‘특이한’ 부류에 속한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나도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책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긴장’ 그 자체였다. 당시 읽겠다고 사놓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은 반년째 읽고 있었고, 다른 한 권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위인전’이나 ‘전기’류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반년이 지난 10월이었다. 당시 읽고 있던 책과의 싸움에서 항복을 선언한 탓에, 선물 받을 당시의 예상보다 일찍 이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내 예상이 틀린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놀랍게도 책을 손에 잡은 지 사흘 만에 독파해버렸다는 점이다. 나는 위인전을 쉽게 읽지 못한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자꾸 책 읽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예외였다. 그러나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책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생명을 건 모험을 하건,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어떠한 감동을 주려 했건, 나는 섀클턴의 이야기에 그리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었다.


모험의 시대에 남극 횡단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였으나, 중간에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쳐 생사의 갈림길에서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고난과 맞서 싸우며, 결국 모든 대원과 함께 살아 돌아온 그의 이야기는 내게는 모두 ‘만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 함께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섀클턴의 리더십은 대단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솔하려면 보통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의 무모한 리더십이 여러 사람을 사지로 끌고 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반론의 여지가 많겠지만, “마치 자신의 능력에 겨워 평화로운 옆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 용병술이 뛰어난 장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리더십은 공허하다. 섀클턴 같은 사람이라면 무언가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일 만들기’와 ‘리더십’ 능력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적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는 와 닿지 않는다.


그의 지나친 낙관론은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미숙함과 숱한 시행착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리더십을 발휘한 많은 부분은 대부분 이 지나친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실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발휘하지 않을 수 있었던 리더십이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를 원하고, 그들의 리더십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떤 것이 훌륭하고 ‘인정받을 만한’ 리더십인지 알지 못한다. 리더십은 그 자체로만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 리더십 자체만으로는 아직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일을 하느냐?“와 “그 일이 꼭 필요했는가?“라는 것에 대한 의문일 것 같다. 자신의 실수를 훌륭하게 수습하는 건, 역시 공허한 리더십일 뿐이다.


-.淳. <졸리다. 글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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