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권 소개
‘세계화의 덫’ 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한동안 세간에 널리 회자되었던 두책이다.
둘다 서로 다른 양 극단에 서서 우리 시대의 현실을 강변하는 책이라는 점이 흥미롭고, 그런 양쪽 모두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읽혔다는 점이 재미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괴리되어있는 지금의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해도 될것만 같다.
세계화라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익숙해져버린 단어 하나가 지칭하는 현상은 우리 삶을 너무나 무자비하게 바꾸어 버렸다.


현실에서의 세계화
얼마전에 신문의 한 기사는 한국 직장인들의 평균 정년이 이제 35세라고 밝혔다. 평균 35세.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7년 남짓 지나면 정년퇴직을 맞게 된다는 뜻이다. 평균이라하니 이보다 짧은 사람도 숱하게 된다는 뜻이리라.
젊은 나이에 정년을 맞이하게 되는 현상의 이면에는 엄청난 ‘경쟁’이라는 녀석이 숨겨져 있다. 그야 말로 모든 인간 관계가 ‘투쟁’으로 점철되는 그러한 ‘경쟁’말이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생쥐
하지만, 그 누구도 ‘왜?’라는 이유는 모른다. 그냥 하루하루 앞만보고 달릴뿐이다. 지나간일을 회고하거나 반성해볼 여유같은건 그 누구도 갖지 못한다. 모두다 우리 세상에 만연해 있는 ‘세계화의 덫’에 걸려들었을 따름이다. 그누구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치열히 경쟁을 하며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알지 못한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쥐들도 같은 현실에 처해져 있다. 누가 자신들의 치즈를 ‘옮겼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것은 일정 행동양식의 선택뿐이다.
죽어라고 다른 치즈를 찾아 나설것인지 아니면 ‘쓸데없이’ 자신의 과거의 치즈를 회상하며 무엇인 문제인지 고민할 것인지?
단조로운 이야기 전개에 의하면 지혜로운 승자의 자리는 자신의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새로운 경쟁에 자신을 내던지는 생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모든사람들에게 이 생쥐를 닮을 것을 종용한다.
우리는 애처로운 생쥐들
애처롭지만 ‘세계화의 덫’에서 주어지지 못한 해결책은 결국 한마리 영리한 생쥐에 의해서 실현된다. 왜? 라는 의문을 품을 필요없이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자신을 채찍질 하면 될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은 어쩐지 서글프다.
그렇게 앞만바라보고 달리는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알고 싶어한 것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단순화를 통한 맹목적 교리 남기기’도 아니었고, 세계화의 덫에서 처럼 ‘슬픈 현실에 대한 체념’도 아니었다.
“왜?”라는 질문을 갖는 지금의 나는 어리석은 것일까?
-.淳. <제 아무리 경쟁력을 갖추어도 세월에는 장사없다.>
덧붙임 :
세계화의 덫의 작자들은 슬픈 현실에 대하여 체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운 대안이라는것은 나의 시각에서는 ‘체념’처럼 보였다. 현실에대한 대안은 당위적으로 필요해서 대안을 냈으나, 그 대안들이 대안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은 그 책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쉬이 깨달을 수 있으리라..
.淳.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2000년 12월 마지막째주
.淳. : <세계화의 덫> : 2003년 1월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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