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주전자에 물을 끓인 후 찻잎을 넣고 우려 마시는 것이다. 나는 ‘마시는’ 행위를 좋아한다. 자리에 앉아 잔에 오렌지 주스, 진한 원두 커피, 보리차, 옥수수차, 녹차, 자스민차, 우롱차, 홍차 등을 따라 마시는 것을 매우 즐긴다. 나는 차를 단순히 습관처럼 마시는 존재로 인식하며 살아왔다.

지허스님은 생각이 좀 다르신 듯 합니다.
이와 달리 지허 스님은 매우 다른 입장을 견지하신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와 얽히며 살아오셨고, 현재는 차로 유명한 선암사 주지로 계신다. 나처럼 그냥 생각 없이 마시기만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입장이 어떻고 저떻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구태여 표현하자면 ‘다른 입장을 견지하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스님이 선의 개념에서 차를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분의 생각의 근원에는 ‘전통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통 문화로서의 차 마시기
스님은 자신의 책에서 차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도 늘 전통문화에 대한 개념의 연장선에서 모든 것을 풀어나가신다. 마치 ‘전통문화’가 절대 선의 개념에 견줄 정도로 ‘올바른 것’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피력하신다. 이러한 차에 대한 설명은 일견 매우 효과적이다.
과학성이나 의학적 특성에 기대어 설명하는 차 이야기에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님들이 차를 만들던 방법과 마시던 방법들을 설명해주고, 우리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차’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주는 방식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설득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전통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훌륭하고 자랑스러워 널리 알리고 지켜나가야 할 우리 민족의 넋일까? 예전에는 융성했으나 지금은 쇠퇴하여 아쉬워진 우리의 유물일까? 한때 우리에게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밀려버린 옛 잔존물일까?
정답은 없다.
정답은 없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고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전통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가 꼭 ‘우리의 전통’을 지켜나가야 할 이유도 없으며 현시대의 주류를 쫓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전통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글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고, 일부 유명한 몇몇 사람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전통차에 대한 포교 활동을 하려고 하는 현실도 사실이다. 그러나 덖음차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스타벅스에서 카페라떼를 한 손에 들고 나오는 사람이 이 땅에서도 더 이상 신기해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지금의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얻어온 중국식 보이차를 The Coffee Bean & Tea Leaf라는 미국 커피와 차를 파는 가게에서 산 컵에 우려서 마신다. 한국 전통차는 아직 본 적도 없다. 아니면 보고도 그것이 한국 전통차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꽤나 높다. ‘전통’도 좋지만, 역시 지금 현실에서 현실적으로 차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스님은 차를 마시면서 많은 생각과 이론들을 생각하시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냥 ‘마시는’ 행위를 좋아하는 생각 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